
1813년, 베토벤 교향곡 7번의 초연이 이루어졌던 때로 돌아가고 싶다.. 는 생각은, 아마 앨런 길버트도 똑같이 했을 법할 생각일지 모르겠다. 공연이 끝나고 흥분이 가라앉지 않은 상태로 쉼없이 곡조를 흥얼거리며 베토벤은 과연 7번을 어떻게 해석해서 연주를 이끌어냈을까가 궁금했다. 하지만, 진정한 베토벤의 의도를 파악하려면 타임머신만 갖고 되지 않는다. 이미 귀의 상태가 좋지 않았던 그의 머리 속까지 들어가 그 파장을 소리로 변환하는 첨단 장치까지 준비해 가야 작곡자의 의도가 고스라니 담긴 그 곡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첫곡으로 한국초연이었던 EXPO를 시작으로 뉴욕필하모니의 공연은 시작되었다. 귀에 익숙지 않은 현대음악을 필두로, 좀 더 익숙한 협주곡과 인터미션 후 교향곡으로 이어지는 프로그램은 여러 공연을 통해 이미 자리를 잡은 듯하다. EXPO의 경우, 웅장하면서도 강한 힘이 있었고, 현대적이라기보다 되려 대중적이라는 말이 어울릴 만큼, 영화음악의 한부분처럼 들렸다. 우주를 매개로 한 영화의 배경음악으로 어울릴 듯한 곡조가 10분여 이어졌다.
이어 멘델스존 바이올린 협주곡 마단조. 워낙 유명한 곡이었던지라 엑스포의 낯설은 느낌을 바로 잠재워주었다. 협연자는 최예은. 1794년 쥬세페 과다니니로 연주한다는 사실에 더 끌렸던.. 그녀는 젊고 열정적이었다. 거의 눈을 감고 곡에 빠져있었는데, 실은 너무 심취했던 탓인지 자칫 빨라지곤 했다. 빠른 연주에 강했지만, 템포를 늦추고 무게감을 줘야하는 부분이 바빠지곤 하다 결국 3악장에 가서 미세하게 플루트보다 빨라 다소 조화롭지 못한 느낌을 보였고, 플루트와 함께 가는 부분에서 몇번 더 반복되었던 게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날카롭지만 섬세하게 끌어내는 소리의 빠르지만 똑떨어지는 기교를 보여주었고, 마지막엔 관중들의 박수갈채를 잘 이끌어냈다. 되려 앙코르곡의 연주에 있어서 평정심을 찾고 빨라지지 않으면서 리듬을 지켜나가는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협연에서도 조금만 긴장을 늦췄더라면 좋았을거란 생각을 들게 했다.
그리고 대망의 베토벤 교향곡 7번. 많은 사람들이 협연자를 이유로 이틀째 공연을 선호하기도 했지만, 내 경우 전혀 고민할 필요없이 첫날을 선택했던 게 바로 7번 때문이었다. 9개의 베토벤 교향곡 중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교향곡이었지만, 이름이 따로 붙여진 것도 아니고 자주 연주되는 곡도 아니었기에 정말 멋진 기회라는 생각으로 기다리던 공연이었다. 머리 속엔 번스타인이 지휘한 뉴욕필이나 카라얀의 베를린필이 연주한 곡이 정석처럼 자리잡고 있었지만, 진정한 기대감은 앨런 길버트라는 젊은 지휘자가 새롭게 이끄는 뉴욕필이 어떻게 곡을 해석해 이끌고 갈 것인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1악장은 정석플레이로 시작되었다. 가장 기대가 되었던 2악장은 부드럽게 나갈 법도 하지만 오히려 음을 또박또박 날리지 않고 연주되었고 특히 작게 연주되는 부분은 아주 세심하게 음을 읽을 수 있도록 했다. 2악장은 슬프게 가라앉혔다 바짝 띄우기를 반복하는 곡의 특성상 흘러가듯이 연주되기 쉬운 부분이었지만, 작거나 커지는 부분의 악기조화가 뭉쳐지지 않게 살리는 연주가 되어 좋았다. 재미있었던 것은, 3악장과 비교하면 바로 나오는데, 3악장이야 말로 장중하게 음을 살릴 수 있는 부분일거라는 생각을 깨고 나비떼가 한꺼번에 날아갔다가 턴해서 돌아오듯이 강약을 조절하면서 서로 주고받는 형식의 악곡을 살렸던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4악장은 악기들의 조화가 절정을 이루면서 탄탄한 음색과 적절한 무게감 속에 마무리되었다. 결론적으로는 2,3악장의 새로운 해석이 인상적이었다.
앙코르곡으로 이어졌던 스케르초는 조금 의외인 듯했다. 보통은 여세를 몰아 좀 더 장중하게 끝내기 마련인데 섬세함을 자랑하는 듯한 분위기에서 살포시 끝을 맺었다. 하나 더 이어졌던 에그몬트에서 이해할 수 있었다. 스케르초가 얼마나 세심하고 예민하게 연주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었다면 에그몬트는 조화로움을 매개로 얼마나 열정적이고 힘이 넘치는 연주가 가능한지를 상대적으로 비교할 수 있도록 보여주는 곡이 되었다. 에그몬트를 끝으로 기립박수를 칠 때의 기분이란.. 베토벤으로 끝을 맺은 공연은 잘 짜여진 페브릭을 흐뭇하게 들여다보는 기분이었다.
앞으로도 7번 교향곡이 더 많은 관심을 받아 여러 교향악단을 통해 연주가 되어 그 차이를 비교해 볼 수 있길 바란다. 앨런 길버트는 뉴욕필을 이끄는 최초의 뉴요커라는 말이 처음엔 의아할만한 외모를 갖고 있었는데, 사실 그의 부모님들이 모두 뉴욕필 출신이라고 한다. 특히 일본인 어머니가 그날의 제1바이올린 연주를 했었더란 사실은 이채롭다. 그는 외모와는 달리 음악을 받아들이는 정확함과 섬세함이 넘치는 힘보다 앞서 있었기에 열정적으로 몰아붙이기보단 그의 손끝 모션처럼 가늘지만 질겨서 끊어지지 않을 음들을 잘 짚어냈던 것 같다. 계속해서 앨런 길버트의 뉴욕필이 더 좋은 연주들을 이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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