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의 운전석과 조수석 사이에 있는 작은 사물함 같은 그곳. 거기엔 항상 매점처럼 캔음료수 몇개와 각종 사탕, 껌, 초콜렛 등이 완벽하게 정리가 되어 있곤 했다. 그것들은 알아서 자리를 차지하고 마치 대단한 레이아웃이라도 해서 끼어넣은 것처럼 차곡차곡 들어 차 먹는 것보다 보는 것이 흐뭇했던 박스. 친구는 보물창고라고 좋아했다. 근데 언제부턴가 사탕과 초콜렛이 빠지고 그 자리에 약통이 들어차기 시작했다. 지금은 약과 먹거리가 반반. 그 사이에 향수병이 자리에 대한 심판이라도 보듯 중심선을 긋고 있다. 언제든 머리 아플때 먹는 약부터 시작해서, 일회용 안약이 가득 찬 작은 케이스와 집에서 늘 거르기 일쑤인 종합비타민제까지. 그래도 그 내용물이 무엇이건 좋은건 헐렁해서 흐트러지고 달그락거리는 소리를 내는 대신에 여전히 잘 정리가 되어 있는 덕분에 꽉찬 느낌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슬쩍 지나가듯이 하게된 지문검사. 그걸 통해 성향을 말해주는데 이쪽도 저쪽도 들여다보더니 죄다 감성적 성향으로 들켜버렸다. 상처를 잘 받는 타입이라나. 과연 그랬었나를 돌아보는데, 그런 결과를 전했을때 지인은 맞지 않는 결과라고 했지만 감성도 그냥 감성이 아닌, 상처도 그냥 상처가 아닌 더블감성에 더블상처 경향. 마땅치는 않지만, 그렇게 타고났다면 반반이다. 받아들이거나 후천적으로 딱지가 많이 생겨봐서 익숙하거나. 겨우 하나 더 추가된 것이 틀을 정해서 그 안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타입이라는 것. 무언가를 끝내거나 완성하고 나서의 성취감에 젖어 사는 사람. 틀을 늘 깨면서 생각의 바운더리를 넓혀가면서 산다는 착각을 하고 있었지만, 식탁에 떨어진 국물 한방울도 그 자리에서 바로 닦지 않으면 식사를 하는 내내 신경이 쓰이고, 운전을 하며 나는 동전의 미세한 부딪힘에 신경이 쓰여 한 손으로 동전의 배열을 바꾸거나 절대 움직여지지 않을 수 있도록 하나를 더 끼워 단단하게 고정시키는 행동. 어질러져 있는 상태가 눈에 익숙해질까봐 늘 경계하는 습관. 그런 것이 다름 아닌 생활 속의 틀임을 다시금 깨닫고 있다.
다시 시작되었던 병원투어. '과' 하나를 겨우 떼어냈지만, 정기적으로 찾아야한다는 것은 여전히 개운치 않다. 떨궜다해도 그게 너무도 일시적이다. 그리고 간만에 또 들러야했던 치과. 치과의사는 내 이의 상태를 봤을때, 아무리 자주 치과를 다니고 관리를 하고 한다해도 어쩔 수 없이 약한 이를 타고 났다고 속 시원하게 진단해버렸다. 그러면서 늘 긴장하고 있냐는 질문을 받았다. 오래전부터 자주 받던 질문이다. 이 역시도 신경정신과 의사가 열심히 신경부조화를 설명해준 덕분에 대충 과학적인 것에 가까운 대답을 자신있게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러한 대답은 커녕 어떠한 대답도 필요없이 했던 형식적인 질문이었던 마냥. 그것도 역시 대답이 필요없을 정도로 맞는 것이었기에 또 다른 진단으로 못을 박아버리기 시작했다. 혀의 라인이 매끈하지 않고 톱니처럼 되어 있죠.. 거기다 볼 안쪽은 양쪽 모두 라인이 생겨 있어요. 그건 항상 이를 꽉 다물고 빨아들이듯이 힘이 들어가 있다는 건데, 본인은 알고 있나요.. 아니, 그 평생의 습관을, 도대체 나이가 몇이나 되어서 '드디어' 알게 된 것인지. 그걸 의식적으로 해보면서 늘 그렇게 이를 앙 물고 지내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스스로에겐 식스센스의 반전처럼 후련하면서 겁나는 일이었다. 그걸로 인해 앞으로 변할 수 있는 구강구조와 이의 상태, 턱의 모양까지 의사는 친절하게도 근육의 상태까지 그림이 나온 원서를 들고 와 그 실험의 결과를 보여주었고 그 다음페이지의 '그래서 어째야하는지'의 사진까지 설명해주었다. 밤엔 어쩔 수 없으니 마우스피스를 사용하라는. 그리고 낮엔 계속 의식적으로 이를 물지 말란. 그 후 며칠 이가 서로 물리지 않게 하려고 종일 애를 쓰는게 조금만 긴장을 늦추고 있으면 다시 앙 물고 있다. 사실 그렇게 할 경우 통증이 유발되고 턱에 힘이 많이 들어간다. 아픈 상태로 평생을 살아 그게 아픈줄을 모르고 있었다는 게 신기하지만, 워낙 몸에 긴장이 스며있는지라 그게 되려 자연스럽고 편한 상태였던 것이다.
긴장을 늦추면 남들이 긴장하는 상태로 몸이 간다. 긴장을 하고 신경써서 그러지 않으려고 애를 써야 편안한 상태에 돌입할 수 있는 정신과 몸의 딜레마 상태에 빠져있다. 늘 긴장해 있는 게 당연해서, 몸에 힘이 풀리지 않고 누워 있어도 온 근육이 이완되지 않아 얼른 잠이 오지 않고 일을 하면 할수록 그 상태는 더욱 심해져서 피곤한 몸에 불면증이 겹쳐온다던지. 목과 어깨가 뻣뻣하고 머리에 지독한 두통이 오는 일. 눈에 불켜고 있다 잔뜩 충혈이 되어서는 더듬더듬 안약을 찾아야 하는 상황. 이를 물고 지내는 근 이십사시간. 이 몸은 오로지 긴장으로 똘똘 뭉쳐져 있었다는 것을, '내 운명은 에너지'란 핑계로 방치하고 지내왔던 것은 아닌지. 앞으로는 어떻게 하면 좀 더 편안한 상태가 될 수 있는지를, 스스로에게 물으며 서로 합의를 해야겠다. 여기서 또 다시 제시되는 딜레마는, 긴장을 조금 늦추고 있을때야 말로 불안하고 초조하며 편하지가 않은 정신상태가 된다는 것이다. 한가로울 때만큼 불안할 때가 없다. 차 안의 작은 박스처럼 꽉꽉 채워져야 마음이 놓이는 상태. 터져나갈 듯이 정신없고 몸이 미치도록 지쳐야 기분이 날아갈 듯 좋아지는. 어쩌면, 이건 일종의 병이다.
at 2009/08/03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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