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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짐의 또다른 표현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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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 Deutsch

여전히 삐져있는거구나.. 라는 얘기가 웃음을 터뜨리게 했다. 그녀가 생각한 삐짐의 표현은 주로 뚱해있거나 문자를 씹거나 전화를 하지 않는 것 내지는 대답을 툴툴거리며 한다던지 만나자는데 바쁘다는 얘기를 한다거나 만나서 얘길 나눠도 멍하니 다른 데를 보는 것. 혹은, 짜증을 내거나 괜히 화를 낸다던가 그럴만한 일이 아닌데 상황에 비해 전혀 생각지 못한 태도를 보이는 이해하기 어려운 상태 정도였던게다. 그녀는 몸이 좋지 않은 그를 위해 집까지 죽과 약을 몸소 배달했고, 꼬박꼬박 연락을 취했으며 괜찮냐는 문자를 보내고 심지어 그가 있던 지방에 데리러 가겠다며 두세시간 거리를 생애최고의 레이싱이었다는 말을 붙일 만큼 정신없이 달려 픽업했다. 그리고 언제부터 기다리고 있었는지를 알리지 않았던 그가 그곳에 있었던 시간을 도착해 알고선 미안해했다. 하지만, 알았어도 더 달린다는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였다. 그 러쉬아워에, 네비에서 알려준 예상도착시간을 무려 사십오분이나 단축해 도착했으니.

재미있게 얘길 나눴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주고 받았다. 피곤하면 눈을 좀 감고 쉬라 하였고, 어차피 눈을 감건 뜨건 상관없으니 기왕이면 편하게 있으라고 했다. 와서 함께 밥을 먹었고, 여전히 얘길 주고 받으면서 어릴적 엄마가 침대를 버려 울었던 얘기며 차를 바꾸게 되면 좋은 마음보다 그간 정든 차와의 작별이 걱정된다는 말까지 하며 차 앞에서 도란도란 거렸다. 하는 행태는 여전히 하던 그대로인데 대뜸 묻는다. 근데, 왜 그러는것이냐고. 뭘 묻는지 모르겠다는 말을 하며 뭐가 다르다고 하는 말이냐 되물었다. 당신 화법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똑같이 해볼까 한다. 몰라. 생각 안나. 그렇지 않아. 내가 뭘.. 무슨 말하는지 잘 모르겠어. 글쎄.. 왜 그랬을까.. 그런 소리들. 그 화법을 양쪽에서 함께 사용할 경우 대화라는 게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한 침묵. 있어보긴 했던 정적이었을까 싶을 정도로 애매한 공기.

그렇게 이유를 묻는 사람에게 왜 그러는지 몰라.. 저절로 그렇게 된거야. 이유없어.. 를 말하다 휴지통에 넣은 거 복귀시키고 말 좀 해보라는 종용에, 이미 비웠어.. 라 답하자 인정해버린 실수를 꼬집었다. 그래. 뭐 있어. 근데 유치해서 말 못하겠으니까 물어보지 않으면 안되겠냐고 단호하게 말했을때, 유치하게 해.. 그런거 못해. 하여 구차한 설명 구구절절 빼고 딱 집어 요점만 나름 최대한 단촐하게 말하고 나자 그는 내내 바보라고 놀렸다. 꼼짝도 말고 가만히 서서 벌 좀 받아야겠다고. 바보. 왜 그렇게 바보야.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그거에 대한 얘기, 당신도 더 하는 거 원하지 않을 것 같고 더 말 안할께. 그녀는 그냥 고개만 끄덕였다. 그는 여전히 바보는 벌 좀 서야겠다고 했다. 더 놀리면 울어버릴지도 모른다는 말에, 내가 당신 침대라도 갖다 버렸냐.. 애마를 제대로 긁어놓기를 했냐.. 하며 또 웃음이 나게 했다. 그리고 조용히, 얘기해줘서 고마워. 잘할께.. 라는 말을 했다.

그녀는 그제서야 자신이 삐졌던 게 맞았다는 걸 인정할 수 있었다. 삐지는 것의 표현은 모두 제각각이라 일반적으로 하는 것들만이 그 범주에 드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나 좀 멋있는 사람처럼 보일 수 있게 그런거 따지듯이 조목조목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말에 단호히 그럴 수 없다면.. 이라고 했던게 굳이 그녀가 원했던 대응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삐짐이라 명명된 상황은 일단락된 듯 보이기도 했다. 사람은, 간혹 자신이 뭐에 삐졌는지도 혹은 삐진 상태인지도 모르는 척 하고 있을 때가 있다. 그걸 인정하기 싫어서도 있고 그런 자신이 싫어서 혹은 자존심이 상해서 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이유를 잊으려 한다. 그게 쿨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곤 아무렇지 않은 척 행동하고 넘어간다. 그러면서 나는 선수니까.. 하며 씁쓸하게 으쓱해한다. 그런 것들이 차곡차곡 쌓여 터질 것도 없이 감정에 영향을 미친다. 감정은 서서히 누그러든다. 마치 주가를 조작하는 악재나 공시와 같은 것들이 있었는데도 그런 것들이 터져 움직였던 것이 아니라 오로지 '그냥' 그렇게 된 마냥. 아무 이유가 없었던 듯 시간 탓을 한다. '감정 앞에 선수없다'는 말에 공감하고도 '끝까지', '존니스트' 쿨하려 한다. 그녀는, 어쩌면 그러고 싶었다. 그가.. 그걸 막는다.


'삐지다'의 표준어는, '삐치다'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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