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인적인 사정이지만, 장면이 현란한 영화를 좀체 제대로 못보는 성격이다. 아니 성격이라기보다 어쩔 수 없는 핸디캡에 가깝다. 초당 프레임이 많아지고 카메라 앵글이 흔들릴수록 정신이 혼미해지고 현기증이 나며 구토 증세까지 유발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보았던 영화가 대표적으로 매트릭스 시리즈였지만, 안타깝게도 보며 고생했던 정신없는 기억이 전부다.
그런 와중에 꾹 참고서라도 봐야하지 않겠는가를 생각하게 했던 아바타의 열풍은 가히 대단했다. 하지만서도 앞서 설명한 것 외에 잔잔하고 지루하기 짝이 없는 영화를 재미있다고 혼자보는 타입인 사람에게 더군다나 환타지를 연상케 하는 파란 생물체(스머프란 말 만큼은 공식적으로 정말 피하고 싶다)의 출연은 생경하기 짝이 없다. 거기다 울렁증을 배가 시키는 3D 영화라니. 더불어 불편하고 신경쓰이는 안경까지 착용하고 짧지 않은 시간을 내리 앉아 있어야 하는 상황은 보기 전부터 부담으로 작용했다.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에 입각해 쓴 글입니다. 감독의 이름과 환타지류라는 이야기가 전부인 사전지식 하에 봤으며 타인의 평이나 영화에 대한 정보를 직접 찾아 접해본 것은 없었고, 지인의 말을 전해 들은 게 전부일 정도인 상태에서 쓴 글이므로 다분히 주관적임을 감안하여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내용에 대한 스포일러까지는 아니지만, 혹여 보신 분이 아니시라면 영화를 먼저 보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다보고 나서 나온 첫마디는 '이런 미친 영화가..'였다. 크레딧이 모두 올라가고 관객이 다 빠져나가는 동안 연상되었던 관련 요소를 하나씩 꺼내서 이야기하는데 그것들은 결국, 그 영화를 호평할 수 밖에 없는 이유들이 되었다. 돈 많이 들었을 법한 영화들의 화려한 영상에 따라가지 못해 아쉬움을 남기곤 하는 스토리 면에서 볼 때, 아바타는 뻔한 구성이다.. 보다는 메세지가 확실하다는 쪽이 맞다. 명확한 메세지는 지구상에 일어나고 있는 상황을 다채롭게 재해석하여 빗댈 수 있도록 해준다. 일전에 방송되어 반향을 일으켰던 '아마존의 눈물'을 비롯하여 사라지는 아프리카의 현황이나 개발을 정답으로만 생각하는 인간의 안일한 대응방식이 불러 일으켜 온 자연파괴와 더불어 그것이 자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문화를 말살하고 언어를 사라지게 하는 우리 지구의 '슬픔의 시대'를 만들어 내고 있는 것에 견주어 전지구적 반성모드를 유발시키는 고마운 역할까지 해낸다.
영화를 보다보면 누구나가 다 판도라 토착민의 편이 된다. 보는 관객이 길들여져가는 제이크가 되어 함께 아바타화 되는 것이다. 그리고 판도라를 집어 삼키려는 지구인들의 공격에 안타까워 한다. 나비족의 영역이 파괴되고 그들이 있을 곳에서 쫒겨 가게 되는 상황에서 흘러나오는 웅장하고 엄숙한 OST에 인상이 굳어진다. 인간들은 그들에게 인간의 입장에서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댓가로 학교나 도로의 건설 등을 해주려 하지만,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그들을 자연과 함께 할 수 있도록 내버려 두는 일이다. 지구 곳곳에서 자행되는 일이지만, 막상 영화를 보면서 절대 파괴되선 안될 성역과 같은 판도라를 두둔하면서도 실제 일어나는 개발에 이내 무심해지곤 했던 우리를 자각하게 한다. 아마존 원주민들이 그들만의 세계라는 틀이 무너지면서 자전거를 타고 오토바이를 몰고 다니며 오두막 같은 그들의 쉘터에서 어울리지 않는 텔레비젼 앞에 모여 있는 모습이 과연 바람직한 일일까.
이보다 놀라움은 또한 상상력에 기초한다. '교감'에 대한 제시는 언어를 뛰어넘는 표현의 형이상학에 접근하고 있다. 물론 영화에서는 나비족들이 사용하는 그들만의 언어가 있었지만, 교감이라는 매개가 좀 더 나아가 '이룩'될 수 있다면, 어쩌면 언어는 정확한 수준에서의 수단이 되지 않을까. 서로의 교감만으로 언어의 장벽도 넘어설 수 있지 않을까. 교감은 언어가 가진 한계를 명확히 꿰뚫어낼 수 있는 요소가 아닐까. 물론 어느 정도의 교감이 살가운 집단에서 일어날 수 있지만, 그것을 영화에서 보여주는 것만큼 기능하는 것은 아닌 만큼 교감 자체의 가능성에 대한 즐거운 상상까지도 가능케 하는 부분으로의 요소다.
영화를 보다보면, 여자주인공인 네이티리가 아름답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울러 미의 관점에 대한 재고를 하게 된다. 판도라의 토착민들은 눈 사이가 멀고 코가 넓고 낮다. 심지어 피부는 파란색이며 군데군데 반짝이는 점들이 랜덤하게 분포되어 있고 커다란 노란색 눈을 갖고 있다. 재미있는 사실은 그들의 모습에 점차 눈이 익숙해짐에 따라 그들의 관점에서 미의 시각이 새롭게 생겨난다는 것이다. 우리가 갖는 기준에서 예뻐 보일 수 없는 요소를 기본'장착'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시각에서 예쁘고 말고를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적어도 네이티리를 보면서 그녀의 콧대를 세우고 피부의 얼룩과 점을 빼 매끈하게 만들고 밝고 환한 피부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거나 코를 오똑하게 올리거나 콧날을 날렵하게 세워주고 멀기만 한 그 눈 사이의 앞트임을 해줘야 추장 딸로 손색없는 얼굴이 아니겠느냐는 생각을 하진 않는단 말이다. 그리 봤을때 미의 기준이란 것은 집단화의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닌가를 생각하게 한다. 길들여지고 만들어지는 것이며 변화될 수 있으며 상대적인 것이라는. 시간에 따라 달라지는 사회적 분위기에 의한 미의 잣대 뿐 아니라 종족간의 차이(인간과 나비족), 공간의 차이(지구와 판도라)에 의해 다른 잣대가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이 밖에도 3D는 자칫 유치한 '다이나믹 시어터'(놀이공원에 설치된 20분짜리 4D극장이던가)를 연상케 하지 않고 적당한 수준의 입체감이 제법 괜찮았더라는 점과, 이런 엄청난 영화를 10년도 더 전에 구상해 놨으나 기술이 따라오지 못해 (물론 투자의 문제 등 여러가지 제약이 존재했겠지만) '이제서' '출시'하게 되었다고 말하는 제임스 카메론 감독. 참 대단하다. 영화를 보는 사람들에게 혹은 특정 관객의 일정 부분에게 스트레스 해소용 영상을 제공하기보다는 너무 디테일한 부분까지 신경써서 놀라운(제이크와 네이티리는 코디할 것도 없어 보이는 외모를 계속해서 변화시킨다), 연구와 분석이 바탕이 된듯한(원주민의 다양한 행태와 그들의 표현형 등. 또한 네이티리가 슬픔을 가득 표현해 울부짖는 모습은 현대사회가 요구하는 슬픔도 기쁨도 참을 줄 아는 인간형과 대비된다) 장면들이 세심하게 볼 수록 더 많은 것들을 갖여다 주는 선물과 같은 영화다. 제임스 카메론이 지구인에게 반성해보자는 의미를 폭 빠질 재미거리로 승화시켜 선물한 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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