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omment Parler Des Livres Que L'on N'a Pas lus?
by Pierre Bayard (Paris, 2007)
참으로 매혹적인 제목이다. 심지어 이 제목은 흡사 악마의 손길같기도 하며, 적어도 달콤한 유혹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미리 권고하건대 절대 읽지 말아야 할 사람들은, 진정 책을 읽지 않으면서 허세를 부리고 싶어하는 '작자들'이다. 저자는 자신이 책에 관한한 '비독서자'임을 칭하지만, 절대 그럴 수 없음은 그의 약력만 살짝 봐도 들통이 난다. 아니, 첫줄만 읽어도 답이 나온다. '파리 8대학 프랑스문학 교수이자 정신분석학자'인 그는 스스로가 독서를 경계-멀리하거나 등안시 하는 것과 확연한 차이가 있다-하는 사람이며, 기억력이 좋지 못하고-그 비슷한 몽테뉴로부터 위안을 얻고자 한다-, 독서를 성실히 수행하는 환경에서 자라지 못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막상 이 책은, 제목에서 기대되는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을 어떻게 할 수 있는가를 말하기보다 비평적 삶에서 독서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독자와 책의 거리는 어느 정도를 유지할 필요가 있는지를 더 중점적으로 다루며 읽지 않은 책의 범주를 전혀 접해보지 않은 책(UB:unknown book)뿐 아니라, 대충 읽어본 책(SB:Skimmed Book), 듣고 알게 된 책(HB:Heard Book), 읽고 내용을 잊은 책(FB:Forgotten Book)까지 확대시키고 있다. 이 범위 안에 드는 책을 일단의 '비독서'에 포함시킨다.
1.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을 읽지 않고 말하기
이미 읽지 않고 말하는 기술은, 이 책을 통해 전수받지 않는다 하더라도 충분히 가능하다. 그건, 비단 다른 이들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곧잘 제대로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논하고- '논'까지 아니더라도 '평'내지는, '얘기', '잡담'이더라도- 제대로 보지 않은 영화를 평가하고, 잘 모르는 가수를 두고 이렇네 저렇네를 말하곤 한다. 심지어 어떤 경우, 영화소개 프로그램을 통해 접했던 영화를 자신을 보았다는 착각을 하기도 하고, 본 영화의 장면이 어디서 나오더라도 전혀 생소한 느낌으로 아예 모르겠다는 듯 다시 보기도 한다. 책은 더 심한 경우가 허다하다. 시퀀스가 줄기차게 연결구조를 갖고 있지 않은 경우엔 뒷부분을 읽으면서 앞부분의 내용을 벌써 잊어버리기도 하며, 그것이 전공서처럼 전문적일 경우엔 제목만 바뀌어도 길을 찾아 헤매일 수 있다. 그런 범주까지도 '비독서'에 포함된다고 본다면, 우리가 일상적으로 접하는 어쩌면 대부분의 경우가 '비독서'에 들어가고 만다. 그렇다면, 이런 현실 속에서 그것을 말하는 것은 어떻게 해야 할까. 저자는, 그와 같은 비독서의 방식들을 책을 전혀 읽지 않은 경우, 대충 훑어보는 경우, 다른 사람들이 하는 책 얘기를 귀동냥한 경우, 책의 내용을 잊어버린 경우로 나누고 있으며, 말해야 할 상황을 사교생활, 선생, 작가 앞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는 경우로 정리한다. 결정적인 대처요령은 부끄러워하지 말것, 자신의 생각을 말할 것, 책을 꾸며낼 것, 자기 얘기를 할 것 등으로 일목요연하게 정리한다. '나는 내가 평문을 써야 하는 책은 절대 읽지 않는다. 너무 많은 영향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라는 오스카 와일드의 문구로 시작되는 본 책은 다양한 비독서의 상황을 당황해하지 말고 당당하게 대처하라 이른다.
위와 같은 촌평은 이 책의 제목을 알고 목차를 본 후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읽고나서 쓸 수 있는 수준이다. 어쩌면 저자가 권한 대처요령에 대략 끼워맞춘 정도가 된다. 재미있는 사실은, 책의 후면에 적힌 글, 즉 이 책을 권하는 뉴욕타임즈 북리뷰나 르몽드의 짤막한 글은 그만큼도 읽지 않고 거의 제목에만 의지해서 쓴 것으로 추정된다. ('강요가 아닌 자유로운 읽기를 통해 책과 함께 살아가는 다양한 방법을 제시한다!' - 뉴욕 타임즈 북리뷰, '이런 책은 반드시 읽어야 하고 내용 또한 잘 알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주는 두려움, 이른바 "교양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버리게 하는 책이다.' - 르몽드)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에 읽지 않고 말하는 평들이라니.. 얼마나 책의 컨셉과 잘 들어맞는지 웃음이 나올 지경이다.
2. 구조를 알아야 헤매지 않는다.
앞서 게으른 독서가들을 위한 놀라운 솔루션을 제시하는 책을 기대했다면, 오산이란 얘길했다. 저자가 예로 드는 많은 책들의 대부분이 SB에 속한다. 대충 훑어봤단 것은 일반과 비교해 전문가의 견지에서 요점은 뽑아낼만큼 봤다는 얘기가 된다. 안타깝게도 책을 좀 읽는다 하는 많은 사람들은 FB에 많은 책을 분류해 넣을 것이다. '비독서'가 이미 독서들을 포함하고 있는 관계로, 이 책은 책을 꽤나 읽는 사람, 읽어야 하는 사람, 혹은 많은 책에 대한 평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한 책이다. 그렇다고 명확하게, 마치 목차처럼 이럴땐 어떻게 대처해라 하는 방식을 가르치려드는 책은 결코 아닌 것이 목차와 내용간의 간극이다. 내용은 대부분 문학작품의 인용에서 이어진다. 각 제목에 부응하는 문학의 소절들을 갖고 와 소제목을 간접체험하게끔 한다. 때로는 소설의 주인공들이 처했던 비독서의 당황스러움과 난관, 그것을 헤쳐나가는 방식을 보여주며 그런 경우들이 있다고 설명하는데, 자신의 경험을 깔았다고는 하지만, 구체적인 상황은 아이러니하게도 대부분 '픽션'의 상황을 빗대어 논리를 만든다. 제대로 읽겠다고 작정했다면, 저자가 책 전반에서 하나씩 설명해나가는-그러면서 계속적인 용어의 반복이 이루어진다- '집단도서관', '내면도서관', '잠정적 도서관'의 세유형을 정리해 머리속에 담아두어야 한다. 더불어 '화면 책들'의 의미와 같은 것도 지속적인 언급이 이루어지므로 눈여겨 봐두어야 할 대목이다. 또한 이것들은 결국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책과의 거리', '비평을 위하여'같은 주장에 대한 근원적 뒷받침이 되는 요소들임을 명심하자, 책은 뒤로 갈수록 그래서 '책을 읽으라는거야.. 말라는 거야..' 와 같은 모호함에 이어, 막바지에 이르러서는 비평을 위한 읽기의 방법에 지나칠만치 힘을 싣는다. 처음 시작할 때 언급한 무질의 사서(로베르트 무질의 '특성없는 남자'에 나오는 책을 읽지 않는 사서-그는 책을 공평하게 대하기 위해 책을 아예 읽지 않는 쪽을 택함)가 뜻했던 '총체적 시각'을 위해 비평을 위해서 깊이 들어가는 것은 조심할 필요가 있고, 되려 하지 말아야 할 수 있다며 또 다시 돌아가 첫페이지에 언급했던 오스카 와일드의 말처럼 '영향을 받지 않기 위해' 읽지 않는다는 '어쩔 수 없이 읽지 못함'을 피력한다. 마무리가 급하긴 해도 마무리스럽긴 했던 것은, 비평이 저작보다 우위를 점하는 것과 같이, 책들의 위치를 정해주는 비평의 위대한 역할을 논하다 결국 총체적 시각을 갖고 조금 멀리 떨어지자고 말하는 것은 진정한 창작을 위한 것이라는 얘기를 에필로그까지 끌고 간다는 점이다.
3. 그가 읽은 책들은 왜 많은 경우 SB였던가.
자신이 주장하는 방식으로 책을 대하고 있다는 점을 엿볼 수 있는 게 책에 달려있는 '주'의 SB++와 같은 표시들이다. 시간관계상일 수도 있고, 읽어야 할, 더 근접하게 말하면 훑어야 할 책들이 많아서일 수도 있고, 근본적으로 자신에게 필요한 자료만 골라내기엔 그 방식이 가장 적절했기 때문일 수 있다. 십분 이해되는 부분은 깊이 들어가 책을 읽으면, 완결된 책의 구조에 자신을 맡기게 되고 그 길을 따라가다보면 자신만의 길을 잃게 된다는 -누구나 이해될- 책읽기의 일반적 습성이며, 이건 비단 책만의 문제도 아니다. (건축을 대략 보고 평하는 것과 비교해 완전히 설계자의 입장을 이해하게 되면, 과연 무엇을 트집잡아 말할 수 있을까 말이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또한 간접적으로 몽테뉴(엄청난 건망증의 소유자였던 이유로)와 망각의 문제를 논하며, 망각 덕분(?)에 이루어지는 풍요화의 다른 일면에 대해 생각하며 위안받을 수 있으며, 데이비드 롯지의 '무대전환'에 등장하는 '모욕게임'(자신이 읽지 않은 책을 타인이 많이 읽었을 때 승리하게 되는 탈상식의 게임)을 통해 잠시 '햄릿'이나 '올리버 트위스트'를 읽지 않은 게 뭐 어때서.. 라고 당당해질지 모른다.(아쉽지만 잠시간이 될 것이다.)하지만, 저자는 당당하라고 말하며 적절히 대처하라고 한다. 게다가 그럴 수 밖에 없는 이유도 주어진다. 주관적 책읽기의 관점으로 이 책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 일종의 (나의) 내면의 도서관과 내면의 책과 관련된 내용이다. (이전의 내용도 아마 그럴테다. 다음은 절대적으로 개인적 주장이다.) 책을 읽는 우리는 두가지 상태를 겸비하며 책을 대할 필요가 있다. 얕게 읽는 자신과 내용을 파악하는 자신, 전자는 그 책을 모티브로 다른 곁가지를 칠 수 있게 하지만, 저자의 의도와 다른 상상의 나래를 펴기도 한다. 후자는 저자가 원하는 논리에 독자의 의무를 수행하며 따라야 하는데, 이 둘은 거의 늘 동시에 필요하다. 어떻게 스킵과 정독이 함께 이루어질 수 있냐 반문하겠지만, 길을 쫓는 자신과 주위를 둘러보는 자기분열은 두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도록 할 것이다. (이 부분은 저자와 의견이 갈린다. 그는 '차라리' 비독서를 택하라 했지만, 나중엔 그 '비독서'가 독서인가 탈독서인가를 모호하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저자는 각 책의 저자들에게 빠지느니, 무질의 사서가 되라는 권고를 한다.)
'흥미로운 책'임에는 틀림없다. 도발적인 제목부터가 그러기도 했지만, 그의 다양한 소설 속 상황의 예시들은, 각양각색의 책들을 영화소개처럼 엑기스를 감질맛나게 선사한다. 책을 꽤나 읽으면서도 스스로 그렇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저자와 같은 사람들이 아마 이 책의 독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며, '몹시 쉬운' 수준의 문장들은 아니지만, 책 자체가 그리 크지 않고 손에 잘 쥐어져 금방 읽고 털어낼 수 있는 책이다. 오스카 와일드의 '비평은 예술이다'에서 '형태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파악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사실 6분이면 충분하네. 무거운 책의 진창 속에서 생고생을 해야 할 이유가 뭐가 있는가? 맛을 보는 정도로 충분하다네. 충분 이상일지도 모르겠군.'의 6분은 어쩌면 아주 부러울 시간이다. 여전히.. 이 책을 읽고도, 6분은 커녕 여전히 '무거운 책의 진창 속에서 생고생'을 하기로 작정하고 있다. 그것은, 어차피 비독서이긴 마찬가지일 FB을 조금이라도 더 SB의 범주에 넣기 위한 어쩔 수 없는 건망증과의 사투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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